도덕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절대와 상대 사이에서
"거짓말은 나쁘다"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런데 문장을 조금만 바꿔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은 나쁘다"라고 하면 동의가 흩어집니다. 도덕에는 상황과 무관하게 옳고 그름이 정해진 지점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도덕이란 결국 사람과 사회가 합의해 온 규칙인지. 오래된 질문이지만 지금도 사람들이 선명하게 갈리는 자리입니다.
같은 사람이 두 개의 답을 갖고 있다
이 질문이 흥미로운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한쪽에만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덕 일반에 대해 물으면 상당수가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답합니다. 문화가 다르면 기준도 다르고, 같은 행동도 맥락에 따라 달리 평가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이 구체적인 사안으로 내려오면 답이 달라집니다. 힘없는 사람을 재미로 해치는 일, 아이를 학대하는 일을 두고 "그 사회에서는 괜찮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여기서는 다들 "그건 언제나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이 불일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생각이라기보다, "절대"라는 말이 우리 안에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정답이 있다고 보는 쪽의 논리
도덕에 사람의 합의와 무관한 기준이 있다고 보는 입장에는 대체로 세 갈래의 근거가 있습니다.
- 규범의 출처를 개인 바깥에 둔다 — 신의 계명이든, 인간의 존엄이든, 이성으로 도달할 수 있는 원칙이든, 내가 동의했기 때문에 옳은 것이 아니라 내 동의와 무관하게 옳은 것이 있다고 봅니다
- 비판의 언어가 필요하다 — 모든 기준이 그 사회 안에서만 유효하다면, 다른 시대와 다른 사회에서 벌어진 일을 잘못이라고 부를 근거가 사라집니다. 과거의 노예제를 지금 우리가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시대를 가로지르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예외는 규칙을 잠식한다 — 한 번 "이 경우에는 괜찮다"를 허용하면 그 다음 경우도 사정이 있고, 결국 규칙이 남지 않는다는 실천적인 우려입니다
한 가지 오해는 짚어둘 만합니다. 도덕에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고 보는 것과, 그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원칙이 하나여도 그것을 지금 이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판단의 영역으로 남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보는 쪽의 논리
반대쪽도 근거가 얕지 않습니다.
- 도덕 규칙은 실제로 바뀌어 왔다 — 한때 당연하게 여겨지던 규범 가운데 지금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기준이 움직였다는 사실 자체가 기준의 성격을 말해준다는 시각입니다
- 절대끼리 충돌한다 —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원칙과 사람을 해치지 말라는 원칙이 한 상황에서 동시에 적용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둘 다 절대라면 무엇을 버릴지 정해주는 것은 결국 상황입니다
- 보편이라는 이름이 붙는 방식 — 역사적으로 "인류 보편"이라는 말이 특정 시기, 특정 집단의 관습에 붙어 다른 집단에 강요된 전례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편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먼저 의심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흔한 오해가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말이 "아무거나 괜찮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입장에서도 대부분의 사람은 잔인함을 반대하고 약속을 지키는 쪽을 택합니다. 다만 그 이유를 사람 바깥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찾을 뿐입니다.
종교가 이 질문에 늘 따라붙는 이유
도덕의 절대성을 이야기할 때 종교가 함께 등장하는 데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신앙 체계는 대체로 규범의 출처를 개인의 판단 바깥에 둡니다. 그래서 종교를 가진 사람이 절대 쪽에 가까울 것이라는 통념이 생깁니다. 다만 통념이 실제로 그러한지는 별개의 문제이고, 그것을 확인하려는 것이 이런 조사가 하는 일입니다.
그 통념이 단순하지 않은 이유도 여럿입니다.
- 믿지 않는 사람도 절대주의자일 수 있습니다 — 인권, 인간의 존엄, 양심처럼 종교와 무관한 근거로도 "그건 어떤 경우에도 잘못"이라는 문장은 성립합니다. 근거는 다르지만 구조는 같습니다
- 같은 신앙 안에서도 갈립니다 — 경전의 문장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와 그것이 쓰인 맥락을 함께 읽는 태도는 같은 신앙 안에서 오래 공존해 왔습니다
- 신앙이 아니라 배경으로 남기도 합니다 — 지금은 종교가 없다고 답하는 사람 중에도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은 떠났어도 옳고 그름을 느끼는 감각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있는가"와 "도덕에 정답이 있다고 보는가"는 겹쳐 보이지만 같은 질문이 아닙니다. 둘이 얼마나 겹치는지는 물어봐야 알 수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절대'라는 말은 한 겹이 아니다
이 주제가 대화에서 자주 어긋나는 이유는 '절대'라는 단어가 적어도 세 층위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 사람의 생각과 무관하게 옳고 그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 존재한다면 우리가 그것을 알아낼 수 있는가
- 알아낸다 해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가
세 질문의 답은 서로 독립적입니다. 옳고 그름은 존재한다고 보면서도 인간이 그것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고 보는 사람이 있고, 기준은 하나라고 보면서도 사정이 다른 사람에게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방금 이 글을 읽으며 떠올린 '절대'는 어느 층이었는지 잠깐 되짚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위치가 생각보다 뚜렷해집니다.
답이 갈리는 것은 교실 밖에서다
이 질문이 추상적으로만 들린다면, 답이 실제로 갈리는 자리를 떠올려 보면 됩니다.
- 상대를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짓말은 잘못인가, 아니면 잘못이 아닌 것인가
-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규칙을 어긴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 다른 사회의 관습을 우리 기준으로 비판해도 되는가, 그것은 오만인가
- 법과 양심이 어긋날 때 무엇이 먼저인가
이 네 가지에 답하다 보면 자신이 생각보다 일관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비일관성이야말로 이 주제를 계속 조사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정리하면 질문은 하나로 좁혀집니다. 당신이 지키는 도덕은 상황을 넘어서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것입니까. 그리고 그 답에 당신이 믿는 것, 혹은 자라온 환경은 얼마나 관여하고 있습니까.
마침 이 주제를 다루는 설문이 지금 맞썰에서 응답자를 모으고 있습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답할 수 있는 설문이니, 방금 떠올린 자신의 답을 그 설문에 남겨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