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AI에게 고민을 털어놓을까
AI와 대화하는 일 자체는 이미 낯설지 않습니다. 달라진 것은 빈도가 아니라 내용입니다. 번역과 요약을 시키던 창에 진로 고민을 적고, 관계에서 상한 마음을 적고,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적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이 변화를 두고 사람들의 반응은 꽤 선명하게 갈립니다. 어떤 사람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건 좀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도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순간
처음 이 도구를 쓸 때 사람들이 넣던 것은 대체로 과제였습니다. 문장을 다듬어달라거나, 자료를 정리해달라거나, 코드의 오류를 찾아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요청과 결과가 오가는 관계였고, 그 사이에 사적인 것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사람들은 맥락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답을 제대로 받으려면 상황을 말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직을 고민하는데 조언을 구하려면 지금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써야 하고, 문자의 답장을 어떻게 쓸지 물으려면 그 사람과 어떤 사이인지를 써야 합니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입력창에는 정보가 아니라 사정이 쌓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고백을 하려던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답을 받으려다 고백에 가까운 글을 쓰게 됐습니다.
무엇이 말문을 열게 하는가
사적인 이야기를 AI에게 하게 되는 이유를 물으면 대체로 비슷한 것들이 나옵니다.
- 판단받지 않는다는 전제 — 같은 이야기를 사람에게 하면 그 사람의 표정이 먼저 돌아옵니다. 화면에는 표정이 없습니다
- 뒷일이 없다 — 털어놓은 다음 날 어색해지지 않고, 내가 한 말이 다른 자리에서 화제가 되지 않습니다
-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 고민이 가장 무거워지는 시간은 대체로 남에게 연락하기 어려운 시간입니다
- 반복해도 된다 — 같은 이야기를 세 번째 하면 사람은 지칩니다. 지치는 기색을 읽으면 말하는 쪽도 멈춥니다
- 쓰는 동안 정리된다 — 설명하려면 순서를 잡아야 하고, 순서를 잡는 동안 문제의 모양이 드러납니다. 답을 읽기 전에 이미 얻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목록 중 상당수가 상대의 능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AI가 얼마나 좋은 답을 하는지와 무관하게, 말을 꺼내는 비용이 낮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작동하는 조건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대화라고 부를 수 있는가
여기서 의견이 갈립니다. 회의적인 쪽의 논리는 대체로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듣는 주체의 문제입니다. 이해받았다는 느낌은 상대가 실제로 이해했을 때만 뜻이 있다는 입장입니다. 위로의 근거가 상대의 마음에 있다고 보면, 마음이 없는 쪽에서 돌아온 문장은 아무리 정교해도 위로의 형식을 흉내 낸 것에 가깝습니다.
다른 하나는 반대하지 않는 상대의 문제입니다. 사람은 이야기를 듣다가 중간에 끊고 다른 관점을 들이밉니다. 그 마찰이 불편하지만, 생각이 한쪽으로 굳는 것을 막아주기도 합니다. 내가 쓴 말을 잘 다듬어 되돌려주기만 하는 상대와 오래 이야기하면 시야가 넓어지는 대신 지금의 관점이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반대쪽의 논리도 약하지 않습니다. 효용이 실제로 발생한다면 상대가 사람인지는 부차적이라는 입장입니다. 일기, 부치지 않은 편지, 혼잣말, 기도는 모두 답하지 않는 상대에게 말해온 방식이었고 그 나름대로 기능해왔습니다. 이 계보에서 보면 AI에게 말하는 일은 새로운 종류의 행위가 아니라, 답까지 돌아온다는 점만 달라진 오래된 행위입니다. 게다가 사람에게 말할 때 우리가 얻는 것도 상당 부분은 상대의 통찰이 아니라 말하는 행위 자체에서 나온다는 반론이 따라붙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어디서부터인가
이 주제에서 대화가 자주 어긋나는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같은 말을 쓰면서 서로 다른 것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사적인 이야기라는 말에는 적어도 몇 개의 층이 있습니다.
- 오늘 있었던 일을 늘어놓는 것
- 일이나 진로처럼 판단이 필요한 고민을 상의하는 것
- 사람 사이에서 생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는 것
- 가족, 건강, 돈처럼 가까운 사람에게도 꺼내기 어려운 사정을 적는 것
-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을 처음으로 적는 것
첫 번째 층은 거의 모두가 해봤을 것이고, 마지막 층까지 가본 사람은 훨씬 적을 것입니다. AI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이 떠올린 것은 이 중 어느 층이었습니까. 그 층이 어디냐에 따라 이 현상에 대한 판단도 달라집니다.
사람에게 말할 때와 무엇이 다른가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만드는 것은 아마 대가일 것입니다. 사람에게 고민을 말하면 상대의 시간과 감정을 씁니다. 상대는 듣는 동안 자기 일을 미루고, 듣고 나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에게 말할지, 지금 말해도 되는지를 먼저 계산합니다.
AI에게는 그 계산이 필요 없습니다. 바로 여기서 평가가 갈립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무비용이 핵심 가치입니다. 부담을 지우지 않고도 말할 곳이 생겼다는 뜻이니까요.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사실이 결함의 이유입니다. 위로의 무게가 상대가 치른 대가에서 온다고 보면, 아무 대가도 들지 않은 응답은 가벼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말하는 일이 번거로운 것은 결함이 아니라 그 일을 의미 있게 만드는 조건이라는 관점입니다.
또 하나 갈리는 지점은 기록입니다. 말은 흩어지지만 입력창에 쓴 글은 어딘가에 남습니다. 사람에게 한 말도 상대의 기억에 남고 옮겨지기도 하니 다를 것 없다고 보는 쪽이 있고, 기억에 남는 것과 데이터로 남는 것은 종류가 다르다고 보는 쪽이 있습니다. 후자의 입장에서는 가장 사적인 이야기일수록 가장 기록되기 쉬운 형태로 남는다는 점이 불편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이 글은 어느 쪽이 맞는지를 정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주제는 아직 정답이 나올 만큼 시간이 쌓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각자에게는 이미 답이 있습니다. 몇 가지만 자신에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 당신은 위의 다섯 층 중 어디까지 적어봤습니까
- 그때 얻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돌아온 답에서 온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쓰는 동안 생긴 것이었습니까
- 같은 이야기를 사람에게 하지 않은 이유는 상대가 없어서였습니까, 부담을 주기 싫어서였습니까, 아니면 판단받고 싶지 않아서였습니까
이 질문들을 실제로 연구하고 있는 설문이 이 글 아래에 있습니다. AI와 대화해본 경험이 있다면, 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의 경험이 그대로 자료가 됩니다. 10분이면 충분합니다. 어느 쪽이든, 답을 남겨 알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