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세를 믿지 않는다면서 왜 매일 켜는가 — 점집에서 앱으로 옮겨오며 달라진 것
운세를 본다고 하면 대개 이런 말이 따라붙습니다. "믿는 건 아니고 그냥 재미로." 변명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어쩌면 운세를 보는 사람의 상태를 꽤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일지도 모릅니다. 믿지 않으면서 보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때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요.
점집에 가는 일과 앱을 켜는 일은 같은 행동이 아니다
운세를 보는 행위 자체는 오래된 것이지만, 그것을 하는 방식은 최근 십여 년 사이에 크게 달라졌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들이는 비용과 수고입니다.
예전에 운세를 본다는 것은 어딘가를 찾아가는 일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소개를 받고, 날을 잡고, 돈을 내고,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들이는 것이 많으니 아무 때나 가지 않았습니다. 진학, 이직, 결혼, 이사처럼 혼자 결정하기 버거운 일 앞에서 갔습니다. 다시 말해 운세는 큰 결정에 붙는 것이었습니다.
앱은 그 문턱을 거의 없앴습니다. 생년월일을 한 번 넣어두면 그다음부터는 켜기만 하면 됩니다. 아침 알림으로 먼저 찾아오기도 합니다. 결정의 크기와 상관없이 볼 수 있게 되자, 운세는 큰 결정에 붙는 것에서 하루에 붙는 것으로 옮겨왔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1년에 한 번 보던 것을 365번 보게 되면, 그것은 같은 것을 더 자주 보는 일일까요, 아니면 다른 것이 된 걸까요.
듣는 것과 읽는 것
앱이 바꾼 것 중에 비용보다 덜 이야기되는 것이 있습니다. 상대가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사람을 마주 보고 운세를 들을 때, 그 자리에는 대화가 있습니다. 상대는 내 표정을 보고 말의 수위를 조절합니다. 나쁜 이야기 뒤에 완충을 붙이고, 내가 되묻는 지점을 보고 내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짐작합니다. 그래서 같은 사주를 들고 가도 자리마다 다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자리의 절반은 점괘였고 절반은 상담이었습니다.
앱은 입력값을 받아 문장을 내놓습니다. 생년월일이 같으면 누구에게나 같은 문장이 갑니다. 내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모르고, 내 표정을 보지 않습니다.
이 변화를 사람들은 반대 방향으로 받아들입니다.
- 어떤 사람은 그래서 앱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비위를 맞추지 않고, 겁을 줘서 추가 비용을 요구하지 않고, 같은 입력에 같은 답을 주니 적어도 일관됩니다
- 어떤 사람은 그래서 앱이 허전하다고 말합니다. 애초에 운세를 보러 간 이유가 예측이 아니라 내 얘기를 꺼내놓고 누군가의 답을 듣는 것이었다면, 그중 절반이 빠진 셈입니다
두 입장은 운세의 정체를 서로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앞쪽은 운세를 정보로, 뒤쪽은 대화로 봅니다. 당신이 운세를 켤 때 찾는 것은 어느 쪽에 가깝습니까.
나쁘게 나온 날
믿음의 정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은 운세가 좋게 나온 날이 아니라 나쁘게 나온 날입니다. 그날의 반응은 대체로 셋 중 하나로 갈립니다.
- 조심한다 — 운전을 덜 하거나, 말을 아끼거나, 중요한 연락을 하루 미룹니다.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행동이 바뀝니다
- 덮는다 — 읽고 웃고 잊습니다. 좋게 나온 날의 문장만 기억에 남습니다
- 다시 본다 — 다른 앱을 켜서 한 번 더 봅니다. 더 나은 문장이 나오면 그것을 채택합니다
세 번째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다른 앱을 켜는 사람은 운세를 믿지 않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믿기 때문에 더 나은 답을 찾아 나서는 사람일까요. 운세를 정말 예측으로 믿는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갈아치울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갈아치우는 행동 자체는 그 문장에 힘이 있다고 인정하는 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맞았는지 확인하지 않는 이유
앱은 기록을 남깁니다. 어제 뭐라고 했는지, 지난달을 어떤 달이라고 했는지 화면을 올려보면 남아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 들은 말은 그 자리에서 흘러가버렸지만, 앱의 문장은 지나간 하루와 대조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조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럴 수 있는 조건이 처음 생겼는데도 하지 않는다면, 이유를 두 갈래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애초에 맞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대조하면 재미가 끝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입니다. 뒤쪽이라면 "믿는 건 아니고"라는 말은 체면치레가 아니라 그 재미를 지키려고 미리 둘러둔 장치에 가깝습니다.
성격 유형 검사와 나란히 놓고 보면
운세 앱을 쓰는 사람들은 성격 유형 검사도 함께 씁니다. 둘은 전혀 다른 계통에서 왔지만 쓰임이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둘 다 나를 설명하는 언어를 밖에서 빌려오는 일입니다.
"요즘 일이 안 풀린다"는 상태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거기에 운이 바뀌는 시기라는 이름이든 내 유형은 변화에 약하다는 이름이든 하나가 붙으면, 상태가 해결되지는 않아도 다룰 수 있는 모양이 됩니다. 사람들이 이런 언어를 찾는 이유는 미래를 알고 싶어서라기보다 지금을 말할 수 있게 되고 싶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두 가지는 같은 것일까요. 여기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성격 유형은 내가 적어 넣은 답에서 나오고, 사주는 내가 고르지 않은 생년월일에서 나옵니다. 내가 쓴 답이 정리되어 돌아오는 것과, 내가 선택한 적 없는 조건이 돌아오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돈을 내는 순간
무료로 보던 사람이 결제 화면을 만나면 태도가 한 번 드러납니다. 몇 천 원을 내는 사람은 그 문장에 그만큼의 값을 매긴 셈이고, 거기서 멈추는 사람은 재미의 한도를 분명히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사람이 상황에 따라 양쪽을 다 한다는 점입니다. 아침 운세는 무료로 보고 잊지만, 이직이나 궁합처럼 혼자 결정하기 어려운 일 앞에서는 결제를 합니다. 앱이 문턱을 없앴다고 했지만, 사람들 안에서는 그냥 보는 운세와 돈 내고 보는 운세의 구분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서 말한 큰 결정과 하루의 구분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가격표로 옮겨간 셈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이 글은 운세가 맞는지 틀리는지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 자리에서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고, 사람들이 실제로 갈리는 지점도 거기가 아니었습니다. 갈리는 곳은 이쪽입니다.
- 운세를 본다와 믿는다는 당신에게 같은 말입니까, 다른 말입니까
- 나쁘게 나온 날, 당신의 하루는 실제로 달라집니까
- 사람에게서 듣는 것과 화면으로 읽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미더웠습니까
- 어떤 일 앞에서는 돈을 내고, 어떤 일에는 내지 않습니까
지금 맞썰에는 모바일 운세 앱을 쓰는 경험을 묻는 설문이 올라와 있습니다. 화면을 직접 만져보면서 답하는 방식이니, 위의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이 어느 쪽인지 설문에서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